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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칼럼

[법정스님] 개고기 반대


한국은 오는 2002년에 일본과 함께 <월드컵> 축구 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개최의 기쁜 소식과 함께 외국의 동물애호가 협회에서 한국의 개고기 습관을 비판하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의 기억에 <88올림픽> 때에도 그러한 경험을 한 한국인으로서는

참으로 난처한 모욕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일반적인 느낌이다.

그러한 때에 연이어 <동남아시아>에서는 한국인들의 '웅담'채취를 위한 무차별한 '곰 도살' 행위가 적발되어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고 이 또한 매우 심각한 현실이요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해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개고기를 좋아하고,

또 곰의 쓸개인 웅담을 질병 치료의 중요한 약재로 생각하고 있는 <한의학>에 대한 믿음이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입장에서 볼 때는 개와 곰의 밀도살은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개고기의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주간지 『한겨레 21』(96년 7월 19일)은

본격적으로 한국인들의 개고기 식습관을 변호하였다.

많은 개고기업자들의 요청과 또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된 편집이었지만

찬성 일변도의 편집인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매우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또 얼토당토 않는 주장들이 횡행하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한마디 조언하여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 잡고

불교본연의 동물애호 사상을 고취시켜

한국인들의 정서를 순화해서 그로 인한 사회의 정화에 일조하고자 한다.

주간지 『한겨레 21』은 민속학자 주모씨를 동원하여,

<개고기 식습관>은 한민족의 '전통적인 식문화'이며

또 그것은 중국에서도 있었던 일이기에 '동양의 오랜 역사적 전통'이 있는 것이며

또 식문화의 '다원주의'에 입각하여 한국의 개고기 식습관은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주간지 『한겨레 21』은 '동물애호'라는 서양사상으로 함부로 동양을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개고기 식습관>은 '전통적'이라는 점과 '문화적 다원주의' 관점이라는 점과

'동물애호가 서양사상'이라는 이 세 가지의 주장들이 문제가 될 것이다.

첫째, 우리 고유의 식습관의 전통이라는 주장은 그동안 일반 국민들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우리 전통은 무엇이가,

과연 한국의 과거역사가 어떤 한가지의 전통이라고 볼 수있는가.

불교의 전통 그리고 도교 또 유교 그리고 민속적 전통 등등이 혼재한 상황에서 어느 하나를 전통이라고 하겠는가마는

▶그래도 불교의 문화 전통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불교의 '동물애호사상'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개고기 식습관은

절대로 전통문화가 될 수 없고,

그것은 국민 일부의 한 식습관에 불과한 것이다.

개고기 식습관은 현대에 와서 노골화되었지 사실 과거에는 '여성들의 금기식'이었고

사회전반까지도 꺼리는 '요주의 식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설령 과거의 식습관이라고 하더라도

과거가 그러하니 현대에도 그래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 주장이다.

한 사회의 문화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발전하게 마련인 것이다.

정치나 사법제도 그리고 인권 등은 이러한 사회발전에 입각해서 점차 발전하게 된다.

생활문화도 그러하다.

예를 들면 조선조식의 한복은 꼭 서양식 의복이 아니더라도 점차 활동복으로 간소화하게 마련이다.

식생활도 그러한 것이다.

만일 과거나 전통만을 고집한다면,

어떤 이가 말하기를 왕정과 그 세습제도는 과거의 아주 오랜 전통이며

과거의 세계적인 정치제도였기에 현 민주제를 폐지하고 왕정을 복구하고자 주장한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주장과도 같은 것이다.

▶ 먹을거리가 제한되었었고 육체노동이 심했던 과거에는 개고기 식습이 용납될 수 있겠으나

지금은 취하 고기종류도 많고 고달픈 노동은 대게 기계가 대신하고 인간의 정서도 고매해지기가

요구되는 입장에서 볼 때는 <애완동물>에 속하는 개고기 식습관은 야만적 행위라 할 것이다.

개는 대게 인간이 그 집을 지키고자 키우기 시작했던 보디가드로써의 역할을 하였던 점에서,

또 말도 전쟁터에서 주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육된 점에서

인간과 밀접하게 살을 맞대고 사육했던 개와 말에 대한 도살과 그 고기의 식습관은

'인간신뢰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질 것이며 어떠한 '변설'을 늘어놓더라도 그 죄의식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끝내 전통을 말하는 이가 있다면 필자는 다음의 질문을 하고자 한다.

동양 문화의 중요한 한 원천이 <중국문화>인데 중국문화의 식습관에는 인육식습(人肉食習)이 있다.

흉작으로 인명이 기아로 죽어가는 때에 그 시체를 잡아먹던 것이 시발이 되어

나중에는 먹고 싶어 살인을 하기도 하고 사형수의 시신을 귀족들이 달려가 뜯어먹었으며,

그러한 인육식습은 중국고유의 식문화가 되어

송대(宋代) 말기에는 『철경록(輟耕錄)』이라는 인육요리책자가 발간되기도 하였다.

(참조: 교문사 발행 '中國의 食人文化')

또 대 성인이라는 공자(孔子)도 평소 해(?)라는 인육요리를 즐기다가

사랑하는 제자 자로(子路)가 살해되어 그 시신이 이 해라는 요리로 공자에게 배달되자,

그 때부터는 공자도 인육을 먹지 않았다고 하니 과연 <인육식습>은 중국의 전통적인 고유문화인 것이다.

둘째, 그렇다면 오늘날 전통보전과 문화의 다원주의 차원에서 중국의 인육식습을

중국인들이 마땅히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겠는가.

이 다원주의는 여러 방면에서 곧잘 등장하는 용어인데 이것 또한 그 폐단의 그림자가 짙은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진리적 주장이 있지만 결코 최고로 우수한 진리가 인간들에게 선택되어질 것이다.

다만 상호 지나친 전쟁적 갈등을 지양하는 점에서 다원주의가 한때나마 필요하지만은

결국에는 자연히 열등하고 잘못된 것들은 사라지고 하나의 진리만이 남게될 것이다.

이 다원주의가 잘못 주장되면 그것은

결국 자신의 부정과 무능과 태만을 감추는 방패막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 일례로 박정희 전대통령은 과거에 자신의 장기집권을 변명하기를 한국 실정에 맞는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장했지만 그것은 대만의 총통제를 도입하여 종신 대통령으로

영구집권을 도모하려 했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셋째, 동물애호라는 서양사상으로 동양을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주간지『한겨레 21』의 주장은 어떠한가.

이는 사실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아주 무식한 주장으로 해당언론의 수준미달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불교에서는 '의식이 있는 동물'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 했고

우리의 건국설화가 담긴 <단군 설화>에서는, 곰과 호랑이에게 인간이 될 기회가 주어졌으나

곰만이 그 시련에 합격하여 여자가 되고 그녀는 환인의 아들인 환웅과 결혼하여 인류의 시조인 단군을 낳았다고 하였다.

또 『삼일신고(三一伸告)』라는 단국경전에서는

사람과 사물이 모두 세 가지 진실을 함유하고 있다.

(人物이 同愛三眞고 하였다.

그리고 <대중문학>인 ‘흥부전’에서는 제비다리를 고쳐준 흥부가 하늘의 큰 복을 받았다고 하였다.)

▶ 이와 같이 우리 <전통사상>에는 동물과 자연을 인간과 친화적인 관계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불교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불교의 동물애호사상은 산목숨을 살려주는 방생(放生)의식에서 단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한국의 전통사상이 동물 애호적인 반면에

서양사상은, 신이 인간을 위하여 만물을 창조했다고 믿기 때문에

자연훼손은 물론 동물도 얼마든지 죽여서 식사거리로 삼을 수 있다고 했고,

불교도라면 누구든지 기독교인들로부터 그러한 힐난을 한번쯤은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고기논쟁에서,

동물애호사상이 서양사상이라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제창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논리이며

도리어 서양사상을 우상화시키는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인가.

서양의 동물애호사상은 동양에서 건너간 것이라는 사실을 주간지 『한겨레 21』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개고기 논쟁을 계기로 『한겨레 21』은 동물차별사상은 동양사상이라고 강변한 셈이 된 것이다.

이 논쟁을 보며 몇 가지 집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첫째,

우리의 한국 사회가 이성보다는 이권에 바탕을 둔

대중적 선동술의 판을 치는 성숙하지 못한 사회라는 점이다.

이 점은 정치나 사회 각계 각층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감하는 내용이다.

둘째,

일부 언론들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업자들의 요구에만 응한다면

그것은 논쟁이 아니라 의견광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자신들의 독단을 깨닫지 못하고 국민들의 여론을 오도(誤導)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언론 스스로의 과오를 깨닫지 못하고

과거처럼 군부독재만을 비판하는 일에 치중하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그것은 더 무서운 언론의 문필독재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셋째,

동물에 대한 '무차별한 살상'을 잘못된 <한의학>이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약재의 공급원을 자연상태 그대로 채취하여 사용하려는 것은

약의 성분이 규명안된 구시대의 방법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 약효를 유발하는 성분이 과학적으로 규명되면

인공적으로 합성하여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한의학이 옛날 방식대로 행하여

동물들이 무차별하게 살상되어 약재로 사용되고

만일 그러한 가치가 사람의 장기에까지도 이른다면 그것은 야만과도 다름없을 것이다.

한의학의 교본인 『본초강목』은 제52권 인부(人剖)에서는

사람의 모든 장기도 가공하여 치병에 쓰인다고 했기 때문이다.

한의학이 이제는 크게 각성하여 과거와 같이 동물살상이나 사주하지 말고 더 한 단계를 발전을 이루어

동양본애의 동물애호사상에 부합되는 의학으로 변하여야 할 것이다.

넷째,

불교인구가 전 국민의 절반에 이르지만

불교가 이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서지 못하고 사회와 겉돌고 있으며

하나의 ‘뒷골목 종교’수준으로 도외시되고 있는 점이다.

종권다툼에는 엄청난 광적인 열광을 하면서 정작 중요한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영향력이 미비하고

오늘날 동물애호사상이 서양에서 발생하였다는 주장까지도 횡행하게 되어도 뒷짐이나 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이러한 천민불교 형태에서 하루바삐 벗어나 이제는 진정한 개혁을 하여야 할 것이다.

다섯째,

사실 개고기 식습의 근거는

개가 그 교미시간이 한시간 이상으로 소나 말에 비하여 몇 곱절이다.

그 점은 뱀이 더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한국에서는 개와 뱀을 정력제로 생각하고 먹는 것이 그 저간의 진정한 이유이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정력에 대한 과도한 집념은

한국이 성폭력이 세계 3위인 점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또 과도한 성 집착은 고아수출과 무절제한 낙태가 빈발한 사회의 원인이 되지 않나 분석이 된다.

낮에는 전쟁 등 한국적인 불열상에 열중하고 밤에는 성에만 탐닉한다면

이는 한국특유의 <천민문화*상놈문화>가 될 것이다.

겨울철이면 골짜기의 개울 돌틈사이에서 동면하는 개구리를 무차별로 잡아먹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우리 국민들에게는 상스러운 측면이 있다.

이들은 저 개구리도 정력을 돋구는 것으로 믿고있기 때문이다.

이상 살펴볼 때,

개고기 식습관은 현대에는 걸맞지 않는 폐풍이오,

국민들의 정신 건강에 아주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악습이다.

우리 사회가 고래로 정치, 경제, 종교 등의 각계각층에서 사분 오열되는 내분에 국력을 낭비하는 것은

정을 들여 키운 개를 하루아침에 도살하여 잡아먹는 데서 오는

인간신뢰에 대한 상실로 인한 배반의 악습이

인간 상호간에도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파생된 당연한 결과라고 필자는 본다.

▶ 또 이 개도살에 따른 공해가 심각하다.

개를 집단으로 사육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소음이 발생하여 '공중적 폐단'이 매우 심각하다.

소음을 줄인다고 '강제로 개의 고막을 파열'시키는 잔인함까지 저지르니 개고기를 먹기 위하여 못하는 짓이 없다.

또 부분적으로는 고기의 맛을 내기 위하여 목을 매달아 놓고

개의 전신을 몽둥이로 사정없이 가격하여

'내장이 파열'되게 하여 잔인 무도하게 죽이는 경우까지 있으니

참으로 '인간말종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죽은 후에는 또 털을 제거한다고 불에 그을려 그 냄새가 동네를 진동케 하니

얼마 되지도 않는 살을 먹기 위하여

이러한 '인간정신에 악영향'을 끼치고

사회에 큰 공해가 되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개장수업자들이 수도 없으니

참으로 국력의 낭비요 '인간사회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흑자가 묻기를 이러한 필자의 주장에,

개나 소나 모두 동물인데 차라리 채식주의를 외치던가 하지

왜 하필 개고기만을 반대하느냐 한다면,

그것은 불교의 중도적 입장에서이다.

개가 인간과 같다고는 절대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인간 생활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만은 특별히 봄으로써

인간의 동물에 대한 사랑의 의식 전환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고기도 먹지말자하면 그것은 자칫 특정 종교의 신조로 비추어질 것이며

또 실현될 수 없는 주장과 같다.

개도살을 방지한다면 은연중에 다른 동물에도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될 것이다.

흑자는 동물에 대한 사랑을 인간사랑으로 대신하는 위선으로 보는 측면도 있으나

동물도 사랑하는데 인간사랑은 말 할 것도 없는 것이며

동물사랑은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불교자체의 입장에서 볼 때는 개는 인간생활과 매우 가깝기 때문에 인간의 윤회환생도 잘 된다고 볼 수 있다.

『목련경(木蓮經)』에도 보면,

부처님의 제자 목련의 어머니가 생전에 죄를 지어 지옥고를 마치고는

개의 몸을 받아 태어났다고 하였다.

다분히 믿기 어려운 신화적 이야기지만

일제 때에는, 강아지를 박대한 한 집주인의 꿈에 죽은 어머니가 나타나 ‘

네가 나를 그토록 박대할 수 있느냐’ 하며 크게 꾸짖기를 며칠을 반복하다가

집주인은 끝내 그 강아지가 어머니의 환생임을 믿고

극진히 대했다는 것은 불가의 유명한 설화인 것이다.

인간생활의 품위유지와 그 정서의 순화와 사회의 평화를 위하여 개도살과 개고기 식습관은 마땅히 없어져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금지하는 현행대로 철저히 집행하여

개의 무자비한 타살이나 소음공해 등은 엄격하게 다스려 이 사회에서 근절해야 할 것이다.

동물애호 입장에서 본다면 <스페인>의 투우도 문제가 심각하다.

투우(鬪牛)는 소를 철저히 희롱한 다음

단칼에 즉사시키는 잔인 무도한 경기를 군중단위로 즐기는 잔악한 게임으로

마땅히 국제적으로 비난과 압력을 행사하여 근절토록 해야 할 것이다.

스포츠인 <복싱>도 사람의 제일 중요한 머리를 가격하여 즉시에 쓰러뜨리는 잔인한 게임으로

실제로 종종 선수들이 사망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일부 의사들은 복싱을 법으로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외 아이들의 장난감에서 총이며 칼 등이 흔한데

그러한 것을 사용할 것을 권장하게 되어

잔인 무도한 밀림 적이고 전쟁 적인 사회를 조장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개고기 논쟁이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잔재한 폭력적 야만으로 다스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이미 죽은 수많은 개들은 그야말로 개죽음이 아닌 사회평화의 중요한 밑받침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1996년 9월호 정법세계]

 

 

개고기 옹호자 분들께 드리는 글 - 정고미라

 

개고기를 반대하는 이유는 개가 소, 돼지보다 더 본질적으로 우월하거나 가치 있는 동물이라서가 아닙니다. 인간에게 정서적으로 더 가깝고 친한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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