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 선언한 유명인들 왼쪽부터 세리나 윌리엄스 테니스 선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스티비 원더 가수, 빌 포드 포드 회장, 비즈 스톤 트위터 공동창업자,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존 매키 홀푸드 CEO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세리나 윌리엄스(35)를 바꿔 놓은 것은 언니 비너스 윌리엄스(36)였다. 2011년 당시 7연승 행진을 이어 가던 비너스의 몸 상태가 갑작스레 악화됐다.
US 오픈 선수권대회 시합을 포기해야 했던 그에게 내려진 병명은 ‘쇼그렌 증후군’.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침샘이나 눈물샘에 만성 염증이 생기고 시간이 지날수록 온몸으로 염증이 번지는 불치병이었다. 비너스가 택한 치료는 식단을 바꾸는 것이었다. 언니가 채식으로 식단을 바꾼 것을 지켜본 세리나는 2년 뒤 같은 ‘채식주의’를 선언했다. 자매지간이니 체질이 같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미국 유기농 식품 판매회사인 홀푸드마켓의 존 매키(62) 최고경영자(
CEO)는 적극적인 채식주의자다. 대학을 중퇴하고 1980년 텍사스 오스틴에 유기농 식자재만을 판매하는 ‘홀푸드’ 가게를 차렸다. 학창 시절 채식에 심취한 것이 사업으로 이어진 셈이었다. 설립 초기에 실적이 매년 두 배씩 늘 정도로 사업은 번창했다. “기업형 축산업자들이 지역사회 발전에 오히려 장애를 가져오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던 그는 2003년 유제품까지도 섭취하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인 ‘비건(
Vegan)’이 됐다.
채식주의자가 늘어나고 있다. 채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빌 클린턴(70) 전 미국 대통령은 세 번의 수술을 경험한 뒤 채식주의자가 됐다. 2004년과 2005년 연달아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 이상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지만 식단을 바꾸진 않았다. 하지만 2010년 병원에서 응급 심장수술을 받은 뒤로는 비건이 됐다. 앨 고어 전 미국 부대통령도 건강 때문에 채식을 선택했다. 반면 존 매키처럼 환경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에 따르면 프랑스채식주의자연합(
AVF) 가입자 수는 2013년 2770명에서 올해 4623명으로 3년 사이 67% 증가했다.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베지테리언(
vegetarian)’의 탄생지인 영국도 마찬가지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 내 15세 이상의 채식자는 2006년 15만 명에서 2016년 5월 기준 54만2000명으로 10년 새 360% 증가했다. 이런 경향은 독일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연구소
IfD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 내 채식 인구는 약 8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전체 인구의 10%가 채식을 하는 것이다.
르 피가로는 최근 채식주의에서 한층 더 발전해 동물로부터 나오는 그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까지도 소비하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을 지칭하는 ‘베가니즘(
véganisme)’이 프랑스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채식은 크게 삼분된다. 붉은 살코기를 제외한 음식을 먹는 페스코(
pesco), 고기는 먹지 않지만 유제품과 달걀은 섭취하는 락토-오보(
lacto-
ovo), 고기와 생선은 물론 유제품과 달걀·꿀을 먹지 않고 오로지 식물성 식재료만을 섭취하는 비건이다. 최근엔 이 비건의 외연이 동물 보호주의로까지 확장되고 있는데 소비 습관과 여가 생활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기업과 시장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가령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거나 동물 실험을 거친 샴푸나 의약품을 안 쓰고, 사냥이나 낚시·승마 같은 취미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이다.
KOTRA는 “증가하는 채식 인구에 맞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 식료품점이 등장하고 식품 유통업체인 카르푸와 유제품 식품회사인 다농 같은 기업들이 이런 소비 흐름에 맞는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채식의 증가와 함께 육류 시장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단백질 섭취가 부족한 채식주의자들을 겨냥해 식물성 원료를 사용한 ‘대체 고기’ 시장이 커지고 있다. 세계적인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0년 글로벌 식물성 고기 시장은 12억 달러 규모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18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유로모니터는 이 시장이 2020년엔 30억 달러(약 3조5000억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대체 육류 시장은 2010~2015년 7.9%나 성장했다. 기존 가공육 시장은 같은 기간 3.6% 늘었다.
‘베지노믹스(
vegenomics·채식경제)’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자라나는 이 산업 뒤에는 기술이 있다. 콩과 아몬드, 참깨와 같은 다양한 식물성 원료를 사용하고도 고기와 똑같은 질감과 맛을 재현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게 이를 방증한다.
대표적인 곳이 임파서블 푸드다. 미국 스탠퍼드대 생화학과 교수인 패트릭 브라운(62)은 2011년 학교 인근에 벤처를 차렸다. 당시 그는 동물성 식품을 ‘세포’ 단위로 분석해 고기 맛을 내는 특정 단백질과 영양성분을 식물로부터 추출해 재현하는 기술이 있었다. 산소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헤모글로빈에 들어 있는 붉은색 성분인 ‘헴(
Heme)’을 찾아냈는데 콩과 식물 뿌리에도 같은 성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지난해 구글이 이 회사를 2억~3억 달러에 인수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임파서블 푸드는 미래 식품회사로 시장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MS)를 세운 빌 게이츠와 홍콩 최고 갑부인 리카싱(李嘉誠)이 이끄는 투자사로부터 2014년 7500만 달러에 달하는 투자금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넥슨의 창업주인 김정주
NXC 대표 등으로부터 1억800만 달러를 추가로 투자받기도 했다. 최근엔 뉴욕에서 한인 2세 셰프인 데이비드 장과 함께 아몬드 오일 등을 원료로 12달러짜리 식물성 버거인 ‘임파서블 버거’를 선보이기도 했다.
비욘드 미트 역시 ‘대체 육류’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농장을 주말마다 찾아갔던 창업주 이선 브라운은 동물을 사랑하게 되면서 채식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을 위해 식물성 햄버거를 고민하게 된 그는 컬럼비아대를 졸업한 뒤 2009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회사를 차렸다. 콩과 같은 100% 식물성 원료만으로 만든 닭고기를 선보였다. 2014년 홀푸드마켓이 치킨샐러드 두 종류를 리콜했는데 식물성 원료로 만든 닭고기와 진짜 닭고기를 구분해 팔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진짜 닭고기와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이야기가 입소문을 탔다. 지난 5월에는 구우면 고기처럼 육즙이 흘러나오는 ‘비욘드 버거’를 내놨다. 이 신제품은 출시 한 시간 만에 동이 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대체 육류회사들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 최대 육가공회사인 타이슨푸드는 지난달 비욘트 미트의 지분 5%를 인수하기도 했다.
또 다른 대체 식품회사인 햄프턴크리크푸드는 마요네즈를 판매하고 있다. 기존 회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달걀이 아닌 식물성 원료로 만든 달걀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2011년 설립된 이 회사는 식물 10여 종에서 추출한 인공 달걀 파우더로 만든 마요네즈 ‘저스트 마요’를 판매하고 있다. 페이팔의 공동 창업주인 피터 틸을 비롯해 세일스포스 설립자인 마크 베니오프, 빌 게이츠 등으로부터 1억2000만 달러를 투자받기도 했다. 독일 초콜릿 회사인 리터 스포르트는 최근 식물성 원료로 만든 ‘비건 초콜릿’을 내놨다. 분유나 버터, 크림과 같은 유제품을 100% 제외한 것이 특징이다.
채식 시장은 국내에서도 싹이 트기 시작했다. 전자상거래회사인 11번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콩고기 제품(75%)과 콩고기 주재료인 활성글루텐(27%), 순식물성 원료로 만들어진 천연조미료인 ‘베지 시즈닝’(131%)의 매출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상승했다. 이경미
KOTRA 파리 무역관은 “동물이 완전히 배제된 친환경 가방이나 액세서리 등 패션 및 화장품과 의약품 등의 영역에서도 채식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제품과 서비스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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