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영진고 3학년 조민혁(19)군은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말했다. 아토피를 앓아 다양한 치료법을 시도했지만 차도가 없어 인생을 자포자기했던 그였다. 가려워 몸을 긁다 온몸이 피범벅이 된 그는 여름에도 긴 바지를 입었다. 초등학교 때는 같은 반 여학생이 “더럽다”고 놀려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런 그가 이제는 당당히 반바지도 입고, 더 이상 ‘남들이 날 더럽다고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안 한다. 가려움이 사라지자 집중력도 높아져 성적까지 올랐다. 밤에 잠도 푹 잔다. 조군은 “현미채식 경험을 살려 대학에서 식품영양이나 생명과학 전공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조군의 인생을 180도로 바꾼 것은 다름 아닌 학교 급식이다.
영진고는 지난 4월2일부터 7월13일까지 채식 희망 학생 34명을 대상으로 하루에 두번(점심, 저녁) 현미채식 급식을 실시했다. 부모들은 아침과 주말 식사를 반드시 채식으로 주겠다는 서약서를 학교에 제출했다. 이 프로젝트는 대구시교육청이 영진고를 채식 급식 시범학교로 지정해 시작됐고, 최근 이 결과가 교육청에 보고됐다. 대구녹색소비자연대가 협조했고, ‘채식 전도사’ 황성수 박사(신경외과 전문의), 이덕희 경북대 의대 교수, 김성희 대구가톨릭대 의대 교수 등 전문가들의 도움도 있었다.
이렇게 교육청, 학교, 부모, 교사, 지역사회 전문가들이 똘똘 뭉쳐 채식 급식에 성공한 결과, 참여 학생 34명의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25명이 체중이 줄었고, 27명이 체지방이 감소했다. 23명은 총콜레스테롤이 감소했다. 아토피로 힘들어한 학생 2명, 여드름이 있었던 학생 5명, 소화불량이 있었던 학생 2명, 지방간이 있었던 학생 1명이 모두 문제 증상이 사라졌다. 김성희 대구가톨릭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학생들의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며 “현미채식이 그만큼의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채식 급식이 끝난 뒤에도 학생 6명은 일반 급식을 하지 않고 부모님이 싸주시는 채식 도시락을 먹고 있다. 홍 교장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채식이 학생들의 건강과 집중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소수 수요자의 요구도 존중해주는 급식문화가 우리 사회에 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채식 급식에 적극적인 곳은 광주와 전북·전남 지역이다. 고용석 생명사랑채식실천협회 대표는 “광주에서는 초·중·고 300개교, 전북에서는 30개교, 전남에서는 일부 학교가 주 1회 채식 급식을 운영하고 있다”며 “교육감의 의지가 그만큼 중요하고, 채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