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채식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럴듯한 이유를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기사를 쓰기 위해서였다. 한 달간 채식을 해보고 그걸 기사로 쓰면 꽤 얘깃거리가 나오겠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누군가 “채식을 왜 하냐”고 질문하면 “기사 쓰려고요”라며 멋쩍게 대답했다.
채식, 생명 존중을 위한 한 걸음
사실 애초에 채식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006년, 새내기 시절이었다. 교양과목 ‘생명의료윤리’ 강의시간에 교수님이 동물의 대량사육실태를 다룬 동영상을 보여주셨다. 몸에 꽉 끼는 우리에 들어가 평생 움직이지도 못하고 인간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어야 하는 돼지를 보면서 ‘저렇게까지 하면서 고기를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점심, 이젠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당찬 포부를 갖고 식당으로 향했지만 돈가스라는 단일 메뉴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의 채식 계획은 반나절도 되지 않아 무너져버렸다.
그 이후, 마음속으로만 채식을 실천하던 3년 동안 학교도 많이 변했다. 학내 채식주의자들의 노력으로 매주 수요일 점심 학관에서 채식메뉴를 제공하게 됐고, 카페소반과 같은 비빔밥 집도 생겼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채식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은 컸다. 동물성 단백질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완전채식까지 가보겠다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채식을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기 위해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내 경우엔 동물을 위한다는 측면이 가장 컸다. 유달리 동물을 좋아하는 나는 인간의 육식을 위해 동물들이 불필요하게 사육당하는 현실이 싫었다. 특히 인터넷상에서 채식관련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면서 동물들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느꼈다.
먼저 세상에 갓 나온 병아리들은 부리와 발톱이 잘린다. 다른 닭들을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A4 한 장만한 크기의 우리에서 평생을 보내게 된다. 돼지 역시 마찬가지다. 번식용으로 키워지는 어미 돼지에게 주어지는 공간은 폭 60cm, 길이 200cm. 임신 기간 114일과 새끼를 낳은 후 포유기간 20일이 지나면 또다시 교배를 ‘당한다’고 한다. 그렇게 일 년에 두 번, 강제로 임신을 하게 된다. 우리가 자주 먹는 우유도 젖소를 착취하는 과정을 거친다. 암소는 돼지와 마찬가지로 1년 내내 임신상태다. 송아지를 낳아야 우유가 나오기 때문이다. 젖이 나오지 않는 수소는 태어나자마자 도살용으로 사육되기 시작한다. 사람과 동물의 입장을 바꿨을 때, 마치 감옥의 독방에 갇혀 지내며 강제로 아이를 가지게 된다는 것 아닌가. 그것도 다른 이들에게 곧 먹힐 아이를.
고기가 빠지니 식탁에 먹을 게 없네… 20여 년 동안 당연하게 먹어왔던 고기를 한 순간에 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치킨, 햄버거, 삼겹살, 순대… 모두 ‘고기의 집결체’였다. 그리고 이들은 나에게 동물의 고기이기 이전에 그저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본격적인 채식을 시작하기 전날, 그토록 좋아하던 치킨을 이젠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친구들을 꼬드겨 치킨집으로 갔다. 노르스름하게 잘 튀겨진 닭다리를 먹으며 닭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기분 좋은 포만감을 안고 집으로 들어왔을 때, 문득 겉옷에서 역한 냄새가 나고 있음을 느꼈다. 평소보다 유난히 심한 닭 비린내였다. 마치 내가 먹은 닭이 나를 책망하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소화불량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생선과 해산물을 끊는 일은 더 힘들었다. 처음엔 해산물을 먹는 것에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한 채식주의자가 쓴 글에서 “찌개거리로 사다놓은 조개들이 입을 벌리며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모습을 보고 다음날부터 해산물을 먹지 못했다”는 문장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불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선과 해산물을 제외하고 나면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먹을 게 없었다. 학생 식당에서 제공하는 메뉴는 대개 고기종류 혹은 생선이었다. 이것저것 따지면 김치도 먹을 수 없었다. 젓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상의 문제’로 생선과 해산물까지 먹는 ‘생선채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을 뿐인데 생활은 생각보다 피폐해졌다. 일단 먹을 게 없었다. 밤늦게 학교에서 돌아와 요깃거리를 사러 들른 편의점에서 다시 한 번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즐겨먹던 라면에는 쇠고기 분말이 들어가 있었고, 샌드위치에는 햄이 들어있었다. 결국 두유 한 통과 선식용 두부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두부라면 질색을 했던 나지만, 정작 먹을 게 없는 상황에서는 콩이건 두부이건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아침은 대개 이런 식으로 두부와 두유, 과일을 먹곤 했다. 한 달 동안 대부분의 끼니를 해결한 곳은 학교 안이었다. 그 중에서도 일단 메뉴가 다양한 식당을 찾아가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주로 농생대 식당이나 사범대 옆 4식당을 이용했는데 3~4개의 메뉴에 모두 고기가 들어가서 다른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수요일 점심마다 학관에서 제공하는 채식메뉴도 사실 고기만 들어가지 않았을 뿐, 한 끼 식사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잔치국수가 나왔을 때는 기대했던 점심치고 너무 부실해서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이래저래 정말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자하연 3층 식당과 까페소반을 찾았다. 가격은 다른 식당에 비해 비싸지만 두 곳 모두 비빔밥이 상설메뉴이기 때문에 걱정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오히려 채식을 하기 힘든 곳은 밖이었다. 외식을 하는 경우 같이 먹는 사람까지 고려를 해야 했다. 일단 쉽게 갈 수 있는 고깃집이나 돈가스, 샤브샤브 등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회식 자리라도 있는 날이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대부분 고깃집으로 갔기 때문인데, 그럴 때마다 혼자 미역국이나 된장찌개를 따로 시켜야 했다. 한 번은 족발집에서 뒤풀이를 한 일이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족발과 순대의 향연 앞에서 나는 깻잎과 상추를 안주삼아 소주를 들이켰다.“학내 채식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 문제”채식 2주차에 접어들었을 때 ‘힘들어서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끼니마다 고기가 들어간 식단에 좌절하는 건 둘째 치고, 몸에 힘이 없었다. 거기다 감기몸살까지 겹쳐버렸다. 단지 고기를 먹지 않을 뿐, 채식을 하며 챙겨야 하는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밥이 문제였다. 대부분의 채식 식단에 꼭 필요한 것은 야채나 과일보다 콩과 현미였다. 그런데 학교에서 제공하는 밥은 대부분이 흰 쌀밥이었던 것. 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 콩과 현미를 통해 단백질을 섭취해야 하는 채식주의자들에게 쌀밥은 너무나 가혹했다. 슬슬 고기의 유혹에 넘어갈 때쯤 한 선배를 통해 서울대 내에도 채식인들의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사람들은 학교 안에서 어떻게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점심 약속을 겸해 만나기로 했다. 대학원 기숙사 식당에서 만난 ‘서울대 채식인 연합(cafe.daum.net/snuvegan)’ 대표 이광조(식품영양학과 박사과정) 씨는 17년 째 채식 중인 완전채식인이었다. “현미밥을 제공받는 것은 채식인의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한 그 덕분에 기숙사 식당 내에서는 현미밥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었다. 그날 식당의 점심 메뉴는 케이준 샐러드. 김 씨는 닭고기를 받지 않고 샐러드만 접시에 한가득 담았다. 계란이 들어간 머스타드 소스도 뿌리지 않았다. 그를 따라 현미콩밥, 샐러드, 된장국만 식판에 담아 오면서도 ‘이걸 무슨 맛으로 먹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쌀밥보다 고소한 현미밥과 신선한 샐러드를 먹다보니 완전채식도 할만한 것 같았다. 생선이나 고기를 먹지 않아도 그다지 허기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씨는 “서울대 내에서도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꼭 채식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채식주의자들의 생각에 동의하는 경우도 있고요”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학내에서 채식을 할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도 덧붙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학생식당에서 하루에 세 끼 내내 고기를 제공할 때도 있는데, 이렇게 식단이 구성되면 단백질과 지방을 과잉섭취하게 된다고 한다. 지나친 육식이 학생들의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불편함을 감수해도 될 만큼 가치있는 일 별다른 고민 없이 생각한 채식은 한 달 동안 내게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채식 후반부에는 누군가 “채식을 왜 하냐”고 물으면 “동물 보호 차원에서요”라는 대답을 하게 됐다. 여전히 쑥스럽긴 했다. 거창한 일을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채식을 하면서 몸에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고기를 먹을 때보다 소화가 잘 되곤 했다. 삼겹살이나 치킨을 먹었을 때 하루 종일 속이 더부룩한 적도 있었지만 채식을 시작한 후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다. 물론 허술한 식단 덕분에 자주 배가 고프긴 했지만. 편식하는 버릇도 없어졌다. 집에서 엄마가 콩밥을 해주실 때면 교묘히 콩만 빼놓고 밥을 먹던 나였다. 이제는 콩만 알아서 찾아 먹을 정도가 됐다. 별로 즐겨먹지 않았던 야채도 맛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먹을 게 없을 때 주로 비빔밥을 즐겨먹다 보니 본의 아니게 온갖 종류의 야채를 먹게 됐다. 마지막으로 몸무게가 3kg 정도 줄어들었다. 채식 덕분인지, 일이 많아서인지 구분은 할 수 없지만 건강하게 살이 빠진 것이라 믿고 싶었다. 한 달 내내 ‘풀만 먹고’ 살았다곤 할 수 없다. 가끔 어쩔 수없이 생선과 해산물을 먹는 경우가 생겼다. 우유와 계란도 마찬가지였다. 혹자는 날 보며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비(非)육식주의자”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마음만은 완전채식주의자였다고 자신할 수 있다. 물론 한 끼 먹을 음식도 아쉬운 이들에게 ‘동물과 환경을 생각하라’는 채식주의자의 말은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굳이 고기를 먹지 않더라도 우리는 하루 생활에 필요한 영양분을 얻을 수 있고, 훨씬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좁게는 학교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는 않았지만 못할 일은 아니었다. 채식주의를 생각하고 있지만 실천은 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일단 시작만 하면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먹을 것은 많다고. 그리고 채식은 이 수많은 불편함을 감수해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