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산 문화, ‘자연주의출산’이 궁금하다!
[사진 출처=인구보건협회] |
출산이란 생명을 탄생시키는 경이로운 일이다. 하지만 모든 산모에게 출산의 순간이 경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산모들은 딱딱한 병원 수술대 위에서 내진이나 회음부 절개, 관장, 분만 촉진제 등 유쾌하지 않는 경험을 하며 아이를 낳거나, 산고가 두렵다는 이유만으로 불필요한 제왕절개 수술을 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나친 의료행위는 배제하면서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아기를 낳을 순 없을까?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엄마·아빠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자연주의출산’이다. 자연주의출산은 환자로서가 아니라 출산이라는 소중한 순간을 맞은 엄마로서 가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평온하게 아이를 낳는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연앤네이쳐 산부인과 박지원 원장에게 자연주의출산의 의미부터 준비 과정, 주의사항 등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박지원 연앤네이쳐 산부인과 원장 |
1. ‘자연주의출산’과 ‘자연분만’은 다른가요?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제대로 된 자연분만(Natural Childbirth) 자체를 자연주의출산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연분만이 약물유도가 배제된 분만 방법이라고 위키백과 등에 명시되어 있듯이 약물 사용을 최소화하고 우리 몸의 내재적인 가능성을 믿으며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의 모든 병원에서 자연분만을 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자연스럽지 못한 과정 속에서 분만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진통하는 산모를 분만실로, 회복실로, 대기실로, 입원실로 이리저리 옮겨가며 출산시키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지 한번쯤 되짚어 봐야 합니다.
산모 입장에선 이렇듯 옮겨 다니는 것이 절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데 우리는 이것을 당연시해왔으니, 어찌 보면 제대로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는 것이 지금의 자연주의출산이 아닐까요? 결국 자연분만과 자연주의출산을 ‘다른 개념’으로 구별하기보다는 제대로 자연분만을 하기 위한 실천적인 변화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2. 자연주의출산에도 종류가 있나요?
아이를 자연스럽게 낳는 것에 방법을 구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분만법을 구별하는 것은 '질식분만'과 '제왕절개분만' 두 가지입니다. 질식분만을 여러 병원에서 르봐이예분만, 그네분만, 수중분만, 공분만 등으로 산모의 자세나 기구에 따라 편의상 구별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만법을 경험한 많은 산모들과 분만현장을 직접 들여다본 이들은 도대체 왜 분만법을 형식적으로 구별 짓고 연연해했는지 허탈해 합니다. 자연주의출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미셸 오당이나 르봐이예 박사의 ‘폭력없는 출산’에 기인한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형식의 구별은 의미가 없습니다.
자연주의출산을 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열려 있어서 ‘상황이 허락된다면’ 수중 출산을 하거나 엎드려서 아기를 낳는 등의 방법을 응용하겠다고 생각하지, 반드시 물속에서 낳겠다는 등의 ‘결정’을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공통적인 것은 ‘폭력이나 두려움 없이’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 아기가 태어난 즉시 분주하게 처치를 하거나 신생아실에 분리시키는 등 아기 입장에서 굉장히 불쾌할 수 있는 자극들은 피합니다. 종류를 구별하기보단 어떻게 해야 아기를 편하게 맞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보니 이것저것 선택할 것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3. 자연주의출산을 위해선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요?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가정에서 아기를 출산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당시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임신을 해도 육체 활동이 지속되었고, 먹는 음식도 지금과는 달리 청정한 재료를 사용한 자연식이었을 것입니다. 출산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아기가 나오는 것으로 인지했겠죠.
하지만 지금의 ‘여성’들은 ‘엄마’로 자라는 대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교육을 받고 자라기에, 특별히 엄마가 되기 위해 지식을 쌓는다거나 훈련을 받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덜컥 임신을 해도 걱정이고, 출산은 더욱 무섭습니다. 운동을 하자니 직장생활로 시간이 없고, 제대로 음식을 해 먹자니 제대로 밥 한 끼를 지어본 적이 없기에 갑자기 엄마가 되는 것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남성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아빠가 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직장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남자들은 아빠 역할을 두려워합니다.
자연주의출산은 부부가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부모 되기’를 위한 준비에서 시작해야합니다. 지금까지는 어느 누군가의 딸과 아들로서 존재했지만 이제는 뱃속 아기의 부모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가 하는 모든 행위가 아기의 성장에 영향을 미칠 것을 명심하고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임신한 순간부터 적절하게 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해서 건강한 몸을 만든다면 당연히 두려움 없이 아기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아기를 쉽게 낳기 위해서 운동을 한다거나 나중에 살 빼는 것이 어려우니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엄마 위주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자연주의출산을 위해 감내해야할 것이 너무 많을지도 모릅니다. 출산 과정에서 아기가 겪을 스트레스와 고통을 덜어준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당연히 엄마·아빠로서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4. 첫째를 제왕절개로 출산했거나 노산이더라도 자연주의출산이 가능한가요?
제왕절개 후에도 자연주의출산이 가능합니다. 흔히 VBAC(vaginal birth after c/section)이라고 합니다. 제왕절개 후 다음 임신까지 기간이 18개월 미만으로 너무 짧거나, 제왕절개를 요즘의 가로 절개 방식이 아닌 세로 절개 방식으로 한 경우에는 자연주의출산을 신중히 고려하거나 삼가야 합니다.
또 노산의 경우에도 자연주의출산이 가능합니다. 임신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출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과도 같습니다. 오히려 경험상 노산이거나 당뇨, 기왕의 제왕절개술 같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산모일수록 더 쉽게 출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의 산모들이 더욱 아기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건강하게 출산하기 위해 본인의 몸을 돌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극심한 조산이나 과거의 자궁근종 수술력, 자연분만이 어려운 산모 측의 요인이 있는 경우는 VBAC이나 노산을 불문하고 자연주의출산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5. 출산 중에 위급한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출산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는 ‘확률상’ 발생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모성사망과 영아사망, 뇌성마비 등의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들이 제왕절개 비율 증가에도 불구하고 줄어들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제왕절개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모성사망률이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입니다.
또 초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어디에 있던지 간에 원천적으로 대처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산모와 보호자들은 의사가 무책임한 말을 한다고 여기겠지만, 의료 현장에선 대처가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초응급 상황은 정말 드물게 일어나고, 이 외의 경우에는 적절한 조치를 하면 됩니다.
극심한 조산아인 경우를 제외하고 34주 이후에 태어난 아기에게는 급한 호흡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지 않고, 산모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기저질환이 있거나 전신상태가 좋지 않은 산모를 제외하고 사실 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낮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유럽에서는 의사 없이 조산사만으로 구성된 출산센터에서 아직까지도 별다른 문제없이 출산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국가 의료시스템의 문제로, 조산사가 출산을 주도하는 시스템과 우리나라처럼 의사가 출산을 주도하는 시스템의 장단점 논의는 별개의 것입니다.
요즘은 좋은 약들이 많이 개발됐고, 산모들의 전신상태도 좋아져서 그나마 안심입니다. 과거에는 급격한 자궁수축 부전으로 출혈이 과다하게 발생했을 때 자궁적출을 하지 않고선 출혈을 멈출 수 없었다면, 요즘은 듀라토신과 같은 약물로 강한 자궁 수축을 유발하거나 자궁동맥결찰술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6. 자연주의출산을 위해 ‘둘라’가 꼭 필요한가요? 둘라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둘라의 필요 여부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출산은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든 일로, 어려움을 함께 나눌 사람으로 남편이 최고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남편이 온전히 산모의 모든 요구를 알아차리고 대응할 수 있을지, 혹은 예상보다 길어지는 진통 과정에서 두려움 없이 산모를 붙잡아 줄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어찌 보면 간병인과 보호자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앞서지만 기술적으로나 정신적, 시간적으로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해본다면 마냥 보호자에게 제대로 간병을 하지 못한다고 타박만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따라서 신체적, 심리적 부분을 보듬어 주는 전문 출산동반자 ‘둘라’가 함께 할 때 출산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집니다. 남편이나 산모, 의료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혹 자연주의출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담 의사나 조산사에게 둘라의 역할을 기대하는 이들도 있으나, 이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의료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냉정함을 유지하지 않고서는 의료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데, 둘라처럼 심리적으로 산모를 돌보기 시작하면 자칫 잘 안될 출산도 산모가 원한다고 그냥 계속하거나, 무통주사 없이 하면 금방 금방 성공할 것을 산모가 아파하는 것이 안쓰러워서 무통주사를 사용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둘라는 전담 의사나 조산사의 역할을 나누는 사람이 아니라, 남편과 보호자의 역할을 가이드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7. 자연주의출산에는 어떤 장점이 있나요?
자연주의출산을 준비하다보면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준비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므로, 출산의 결과물에 대한 원망도 없습니다. 출산 준비 과정에 충실하다 보면 몸이 건강해지고, 건강한 몸에서 태어난 아기는 더 건강하고, 산모의 회복도 빠릅니다. 즉 자연주의출산을 해서 몸이 건강하다기 보다는 제대로 잘 준비했기에 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약을 쓸 필요가 없으니 약을 사용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적고, 몸이 건강하니 회복이 빠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의료행위 거부만을 생각하고 섣불리 자연주의출산에 도전하는 것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43.195km 마라톤을 완주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런 준비가 없다면 아파도 무통주사를 안 놔주고, 시간이 걸려도 촉진제를 안 놔주는 자연주의출산에 질려버릴지도 모릅니다. 빠른 회복과 애착 육아, 낮은 제왕절개 비율, 높은 모유수유 성공률 등 자연주의출산이 주는 장점들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선 준비 과정이 필수입니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에베레스트산을 오를 순 없으니까요.
박지선 기자 jsbak@ppfk.or.kr